88번째
지난 주 목요일이 생신이셨던 어머니를 찾아 뵈었다.
눈꼽을 떼어드리고 귀지를 파 드렸다.
얼마나 오랜동안 귀지를 파지 않았던지 귀지가 까맣게 변해 있었다.
'아 아 어머니 제 말 잘 드리지?'하니 아무 말씀없이 그저 웃으셨다.
앞 침대에 계신 102살 되신 할머니께서 함께 웃으셨다.
벌써 4년이란 시간이 흘렀구나! 같은 병원 같은 자리 같은 침대에 계신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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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
아버님께서 제게 남기시고 간
참회의 눈물이
아직 제 몸 속에
가득 고인 채 출렁입니다.
살아 생전
편히 한번 모시지 못한 죄를
속절없는 눈물이
씻을 수는 없지만
흘린 눈물 한 방울이
따뜻한 아버님의 매라 여기고
제가 이승을 떠나는 날까지
바다만큼 퍼낸다고 한들 사 해지겠습니까.
남의 무덤 가에
짐자전거 뉘여놓고
차가운 점심을 드시면서도
자식 걱정을 먼저 하신
오일장 얘기는
궁색한 촌부의 예사 일 같지만
제게는 용맹한 장부 였습니다.
아버님 함자가 호적과 다른 이유를
나이 들고도 한참 후에야 알았습니다.
왼 손가락 중간에 난 흉터가
아버님의 효심이란 걸 알았을때
저는 감히 당신을 바라 볼 수 없었습니다.
병상에 계신 그 때도
이 못난 저는 먼 길이 야속 타
탓만 하였습니다.
자식 신세 지지 않겠다는 그 말씀을
참 인줄 알고
아무 소식 못 전한 게
한스럽습니다.
차라리
한 차례라도
매섭게 저를 나무라시고
싸리나무 매라도 드셨더라면
이렇게 애절치는
않았겠지요.
기껏 삼년산성 끝자락에
간신히 모셔놓고
아직도 이 자식은
짧은 생 아버님을
원망만 합니다.
뻔뻔스레
용서만 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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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이 갑자기 돌아가신 뒤 쓴 글인데, 이런 후회를 했으면서도
어머니 또한 똑바로 모시시 못하고 있다.
불효라는 말도 감히 입에 올리면 안되는 못된 자식으로 남으려 하는가 그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