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138번째

김동운 2013. 2. 16. 15:52

 

한달만에 어머니를 뵈러 출발.

일주일전에 명절이었으니 아마도 도로에 차가 많지않겠지 했는데...

아직 녹지않은 눈으로 빙둘러 싸여있는 병원에 도착.

어머님이 계신 203호실 문을 살며시 열고 들어섰다. 간병인 아주머님이 반가이 맞아주셨다.

인사를 나누고 어머님 곁으로 가니 어머님이 나를 알아보시고 웃으신다. 그리곤 우신다.

한달사이에 상태가 좋아지신게 분명했다. 웃으며 어머님 눈을 마주하니 쑥스러우신듯 따라 웃으신다.

어머님 손도 잡아보고 얼굴에 난 잡티도 닦아드리고 턱밑에 난 터래기도 뽑아드렸다.

얼굴도 만져보고 머리도 가지런하게 해 드렸다. 다리도 주물러드렸다.

더 이상 건강 해 지시면 좋겠지만 혹여 욕심을 내면 어머님께 화가 될까 싶었다.

그러고 있는데 옆 침대에 숨을 가쁘게 쉬고 계신 할머님이 아!하고 신음 소리를 내셨다.

신음소리라 하기보다 차라리 절규에 가까운 소리였다.

살려달란 소리가 아니라 이만 생을 마감하고 싶다고 하시는 안타까운 절규로 들렸다.

언뜻 어머니 침대 아래쪽에 노란 보자기에 싸인 보따리가 눈에 들어왔다.

병실을 옮길 때 어머니 짐을 모아 싸둔 보따리가 분명한데 무엇인가를 내게 말하고 있는듯했다.

눈물이 날까봐 외면을 하고 돌아서 나왔다.

어머니 건강 상태가 많이 좋아져 보여 안도감을 가지게 된것은 다행이지만 마냥 좋을순 없었다.

병실을 빠져나와 병원 바깥에서 담배 한대를 피웠다.

늘 궁금했던것이 있었는데 병원과 맞닿아 있는 남한강 물가에 까만 비석이 있는데

왜 그곳에 비석이 세워져 있는지 또 누구의 비석인지가 궁금했다.

오늘은 가까이 다가가봤다. "영원히 잊지못하리"란 글귀가 세겨져 있었다.

잊지 못한다란 말에 유한이란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걸까? 그래서 영원히란 말을 앞에 붙였나보다.

영원히 잊지 못한다란 말이 과연 고인에게 위로가 될만한 말일까?

그런 생각을 가지고 분당공원으로 향했다. 분당공원에도 한달만이다.

혼자만의 약속으로 분당가는 일을 3년 150번 방문하시로 했는데

150회 횟수는 지키지 못했으나 3년 기간은 지켰다.

이젠 그 사람도 날 용서하지 않았을까?

오늘 한번 물어봐야겠다그런 마음을 가지고 분당공원에 도착했다.

뽀얗게 쌓인 먼지를 닦아내었다.

내가 오지 않았던 한달동안 쌓인 먼지였으리라. 날이 맑아 하늘이 맑게파랬다.

참 좋은 하늘이었다. 적어도 하늘은 그랬다.